[CPU] 미-중 무역전쟁에 등 터진 인텔 : EPYC by another name
2년 전 이맘때를 돌이켜보면, AMD는 연속적인 분기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장기간 호각세를 유지하던 엔비디아와의 GPU 경쟁에서 돌이킬 수 없는 패배가 확정지어지기 직전이었다. 더 우울한 것은 그나마 GPU 부문이 체면치레라도 가능했던 반면 CPU 부문은 그야말로 시계 제로의 암흑과 다를바 없던 것(이때는 Zen 아키텍처가 세상에 공개되기 9개월 전이었다). 이대로 소니-MS의 SoC 하청업체로 전락하고 마는 것일까?
당시 취임 2년차를 맞은 AMD의 최고경영자 리사 수 박사는 2016 회계연도 1분기 실적발표를 앞둔 이날, 중국 정부와의 깜짝 제휴를 발표한다(링크). 당시 급부상하는 중국의 굴기를 경계한 미국 행정부는 자국 기업의 첨단기술의 중국 본토로의 이전을 봉쇄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는데, 그 중에는 당연히 첨단 오브 첨단인 마이크로프로세서 - 특히 인텔의 제온이 포함되어 있었다.
제온 프로세서는 당시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서버 물동량의 90%에 탑재되어 있었을 만큼 압도적인 시장지배 제품이었다. 그렇더라도 행정명령에서 AMD의 옵테론이 아예 거론되지 않은 것은 당시로서도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고 지금 와서 생각하면 AMD에겐 그야말로 천운이었던 셈이다. AMD와 중국 정부의 제휴가 표면화된 지 정확히 2년이 되는 지금, 그들의 결실이 성큼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리눅스 커널 개발자 그룹에는 최근 Dhyana라는 생소한 이름의 CPU 마이크로코드가 배포되었는데, 벤더 ID 등 표면상의 몇몇 정보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AMD EPYC과 유사하거나 거의 다를바 없는 ("little to no differentiation") CPU임이 알려졌다. 이 CPU의 표면상 제조업체는 중국의 반도체 생산회사 HYGON. 그 배후에는 중국 정부가 있다. 그런데 지배구조를 보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AMD가 인텔과 체결한 x86/x64 크로스라이선스는 각자의 기술을 제3자에게 이전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를 우회하기 위해 2년 전 AMD는 중국정부를 대리한 천진직할시 정부와 공동 출자하여 자회사 HMC(Haiguang Microelectronics Co.)를 설립하되 AMD가 지분의 51%를, 천진시 정부가 49%를 갖게 되었다. 즉 HMC는 표면상 AMD가 경영권을 완전히 통제하는 자회사로 AMD에게 있어 ‘제3자’가 아니다.
한편 안보상의 이유로 정부/공공 서버에 자국 CPU를 사용하도록 하는 정책상, HMC가 만든 CPU를 곧바로 중국 정부가 사용하는 데까지는 여전히 걸림돌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AMD와 천진시 정부는 또 하나의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는데 이것이 바로 HYGON(HiGon, Chengdu-Haiguang Integrated Circuit Design Co.)이다. HMC와 달리 HYGON은 천진시 정부가 과점주주로 70%, AMD가 30%의 지분을 가진다.
HMC는 명목상 AMD의 x86/x64 라이선스를 공유하여 CPU를 설계하는 주체가 되는데 생산의 전 과정을 커버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설계하고 (파운드리 업체를 통해) 생산한 칩은 HYGON에게 판매되며 (이때까지는 완성된 CPU가 아니다) HYGON에서 패키징 작업을 거쳐 최종적으로 CPU의 형상이 된다.
이러한 세탁과정을 거쳐, AMD는 미국 행정부의 기술유출 방지 정책 및 인텔과의 크로스라이선스를 어기지 않으면서 (자신의 자회사에 위탁한 것이므로), 중국 정부는 자국이 생산한 (어디까지나 새 CPU의 ‘완성’은 HYGON의 손에서 이뤄진다) x86/x64 CPU를 갖게 되는 것이다.
2년 전, 이와 같은 밑그림에 합의하며 AMD는 2억 9300만 달러의 유동성을 확보했다. 당시 AMD의 총매출액은 8억 3200만 달러로 전체 매출의 35%가 이 딜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것이 9개월 뒤 세상에 등장할 Zen, 그리고 이후 행보의 마중물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한편, Dhyana가 사실상 이름만 바꾼 EPYC이라는 점으로 미뤄 보면 HMC가 ‘설계’를 담당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명목적인 것에 불과한 것 같다. 극단적으로 말해, 중국 시장에 무혈입성하기 위해 (미국 국적기업인) AMD의 명의 세탁을 위해 HMC라는 법인을 동원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당시의 계약에는 AMD-중국의 합작기업의 세일즈 로열티를 AMD가 지급받는 것이 보장되어 있다. 사실상 '세일즈 본부'를 설립한 모양새이다.
물론 HYGON의 과점주주로써, HMC의 2대주주로써 가격책정 등에서 중국 정부의 협상력이 더 높아질 여지가 있지만 본래 B2B 거래에서 인텔/AMD 양사 모두 권장소비자가와는 크게 차이나는 가격을 제시해 왔기에 (이쯤 되면 ‘권장소비자가’의 기능은 오히려 ‘이 가격에 팔겠다(reserve price)’는 의미라기보다, 협상에서 참고될 ‘첫번째 제안(first offer)’에 가깝다) EPYC의 B2B 실거래가와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지 않다.
결과적으로, ‘대륙 봉쇄령’으로 제온을 쓸 수 없어 무주공산이 된 중국 서버시장에 AMD가 무혈입성할 길이 열린 것이다. 이 모든 것은 3년 전, 미국 행정부의 자충수가 초래한 결과이다.
이 글의 부제는 셰익스피어의 'a rose by another name' (장미는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향기로울 것) 을 오마주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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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붙이면 더 향기로울것 같아요? ^^
짧게는 AMD에게 도움이 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길게 본다면 대륙의 반도체 굴기의 밑거름이 되는 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