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U] 공수교대, 컴퓨텍스 2018 스케치 : 인텔의 선공과 AMD의 카운터
[이미지 제공 @ 위클리포스트 김현동 기자]
예로부터 선공은 추격자의 몫이었다. 기습적으로 이목을 끌고 디펜딩 챔피언에 앞서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이니까.
아직까지 데스크탑 프로세서는 4코어가 당연하던 작년 3월 -이 대목을 써놓고 다시 달력을 보고, 한번 더 생각했다. 지난 한 해 정말 많은 일이 있었구나- 별안간 8코어 프로세서를 출시한 AMD의 행태는 전형적인 '후발주자의 선공' 이었다. 10코어까지 출시되어 있던 하이엔드 데스크탑 (HEDT) 프로세서 시장에 무려 16코어 프로세서를 끼얹은 것 또한 AMD의 만행이었고 역시 이 시장에 지분이 없던 후발주자의 '관심 끌기용' 퍼포먼스로서의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언더독(underdog)의 반란이 잠시 주목받는 건 흔한 일이지만 이를 무자비하게 진입하는 집권자의 카운터 역시 정형화된 양식의 일부였다. AMD의 라이젠 7 출시에 대응해 인텔은 6코어 + 최대 4.7GHz에 이르는 8세대 코어 프로세서 '커피레이크'로 맞불을 놓았고, 라이젠 스레드리퍼를 목도해서는 꼭 작년 이맘때, 아이맥 프로 등 워크스테이션에 공급할 예정이었던 제온 W 시리즈를 간판만 '코어 X'로 바꿔 HEDT 프로세서 라인업에 추가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AMD의 (10년만의) 선공이 불러온 후폭풍]
비록 이 대결에서 AMD가 '진압' 당하지만은 않았고, 관점에 따라 언더독의 반란으로서는 대단히 성공적인 한 해를 보냈지만, 어쨌든 '가격따위 생각하지 않는' 먹이사슬 최상위 소비자에게 있어서 인텔이라는 선택지는 '아직은' 빛이 바래지 않은 어떤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 여전히 최상위 프로세서 대결에서 라이젠 스레드리퍼 1950X는 코어 i9-7980XE보다 코어 수가 적으며, 최대 부스트클럭이 낮고, 그 둘의 곱에 비례해 10% 가량 성능이 더 낮다.
따지고 보면 선공에 이어지는 카운터가 더 강력해야 한다는 것은 불문율과도 같다. 선공의 위력에 미치지 못하는 카운터가 의미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지난 한 주 우리 모두가 목격한, 대만에서 벌어진 인텔-AMD 양사의 장외전은 실로 오랜만의 공수교대와도 같았다. 가만히 있는 AMD에게 인텔이 먼저 28코어 차세대 HEDT 프로세서로 도발을 날렸고, 정확히 24시간만에 AMD는 32코어 라이젠 스레드리퍼 2세대를 공식화하는 것으로 카운터를 친 것이다.
인텔은 올해 창사 50주년이자 기념비적인 i8086 프로세서의 출시 40주년을 맞았다. 한정판으로 출시된 코어 i7-8086K 리미티드 에디션은 그 제원에 40과 50이라는 숫자를 담았다. 4.0GHz라는 베이스클럭은 4년 전 코어 i7-4790K가 이미 등정한 적 있는 고지이지만 6코어 프로세서로서는 i7-8086K가 최초다. 어떤 방식으로든 5.0GHz라는 최대 부스트 클럭이 인텔 프로세서의 제원으로 명기된 것 역시 i7-8086K가 최초다.
또한 인텔은 같은 날 정체불명의 28코어 프로세서 데모를 선보였는데, 최대 1770W의 발열량을 냉각할 수 있는 베이퍼 칠 (Vapor chill) 냉각시스템으로 무장한 이 시스템은 무려 전 코어 5.0GHz 구동에 성공했으며 이때의 시스템 소비전력은 1600W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아난드텍에 따르면 18코어 코어 i9-7980XE를 4.9GHz 근처로 오버클럭할 경우 CPU 소비전력만 1000W를 넘어가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으므로, 28코어 프로세서를 오버클럭한 경우는 그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코어 i9-7980XE의 TDP는 165W이고, 현재까지 28코어를 제공하는 유일한 라인업인 제온 플래티넘은 LGA 3467 소켓을 사용하는데 이 규격은 최대 265W까지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소문에 따르면 인텔의 차세대 28코어 HEDT 프로세서는 300W의 TDP를 가질 것이라고도 한다.
현재 인텔의 28코어 라인업은 TDP 165W의 제온 플래티넘 8176과 205W의 8180 단 둘로 나뉘고, 이들의 속도 차로 미루어보면 차세대 28코어 HEDT 프로세서가 어느 정도 TDP 레벨에서 어느 정도 클럭을 가질지 짐작해볼 수 있을지 모른다. 다행히(?) 예측의 변수를 줄여 줄 소식 중 하나는, 차세대 HEDT 프로세서가 여전히 14nm(++) 제조공정을 고수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제온 플래티넘 8176의 작동 속도는 기본 2.1GHz / 전 코어 터보 2.8GHz / 최대 터보 3.8GHz, 그보다 소비전력이 높은 8180은 기본 2.5GHz / 전 코어 터보 3.2GHz에 최대 터보는 8176과 같다. 확실한 것 하나는, 이날 데모로 보여준 5.0GHz는 아주 심각하게 오버클럭된 수치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24시간 뒤. AMD는 최대 32코어를 탑재하는 2세대 라이젠 스레드리퍼를 발표했다.
최대 코어수가 같게 된 EPYC과의 관계 설정 문제도 있고, 일반 컨슈머 프로세서 (라이젠 7으로 최대 8코어 제공) 와의 간극을 고려하면 1세대 라이젠 스레드리퍼가 커버하던 8-16코어 밴드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기에, 2세대 최상위 제품의 가격은 1세대보다 다소 상향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특히 1소켓 전용의 EPYC P-모델은 라이젠 스레드리퍼와의 차별점을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하는 자기 PR의 시대에 내몰리게 되었다. 참고 삼아 언급하지만, 인텔이 HEDT 프로세서의 가격을 더 올리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현재 코어 i9-7980XE가 맡고 있는 1999달러 포지션에 28코어 모델이 자리잡을 것이다.
마침 AMD는 거기서 멀지 않은 2100달러에 1소켓 전용 32코어 EPYC 7551P를 판매하고 있다.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아마 2세대 라이젠 스레드리퍼의 가격은 EPYC 7551P를 넘지 않을 (넘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설령 작동 속도가 더 높아져서 성능 관계가 역전될지언정 말이다.
왜냐면, 프로세서 자체의 성능에 상관없이, EPYC 플랫폼은 엄연히 라이젠 스레드리퍼 플랫폼보다 풍부한 확장성으로 무장한 더 상위의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32코어 EPYC은 모든 기능이 활성화된 완전체 제플린 다이 4개를 이어붙인 것이다. 똑같이 '풀 칩'으로 간주되는 8코어 라이젠 7, 16코어 1세대 라이젠 스레드리퍼도 실은 사용하지 않고 봉인해 둔 기능이 있으니, 다이 사이의 통신을 위한 인피니티 패브릭 접속단자(인터커넥트)가 그것이다.
반면 (24-32코어의) 2세대 라이젠 스레드리퍼는 제플린 다이 4개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EPYC과 닮았으나, 동시에 이들은 1세대와 같은 X399 플랫폼에 수용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X399 플랫폼은 쿼드채널 메모리 / 64 PCIe Gen3 라인을 지원하는데 이들은 프로세서로부터 유래한다.
결국 2세대 라이젠 스레드리퍼는 4개의 제플린 다이 중 2개분의 메모리 채널과 PCIe Gen3 라인을 제거해 X399와 호환성을 보장한 것이다. EPYC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EPYC은 12nm Zen+ 기반 제플린 적용을 건너뛰고, 곧바로 7nm Zen 2로 직행할 것으로 공언된 바 있다.
끝으로 한 가지만 더. 1세대 라이젠 스레드리퍼 1950X / 1920X는 TDP 180W로, 각각 TDP 95W의 라이젠 7 1800X / 5 1600X의 제원을 두 배 부풀린 것과 같았다. ('같았다'의 기준은 코어 수, 그리고 올 코어 부스트 속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1950X는 최대 3.7GHz로 16개의 코어를 구동할 수 있었다. 32코어의 2세대 라이젠 스레드리퍼는 TDP가 250W일 것으로 알려졌는데, TDP 65W의 라이젠 7 2700을 네 배 부풀린 것과 엇비슷할 것 같다.
* 발표장에서 시연된 제품은 올 코어 부스트 속도가 3.4GHz였으며 AMD는 현재 최종 제원이 확정되지 않았다 (working in progress) 고 밝혔다. 한편 라이젠 7 2700의 올 코어 부스트 속도는 닥터몰라의 이 글(링크)에서 측정된 바 대략 3.5GHz 언저리였다. 이변이 없다면 이 선에 맞춰지거나, 수율이 매우 좋은 다이를 수작업으로 선별해 100-200MHz 정도 상향시키는 선에서 결정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이것은 인텔-AMD의 경쟁 문제이기도 하지만,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자칫 페이스가 꼬일 위험이 점증하는 각 회사 내부의 교통정리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예년과 같은 주기로 제품 개발이 이뤄지고 있었다면 인텔은 28코어 다이를 HEDT 프로세서 시장에 끌어내리는 강수를 두지 않았을 것이고, AMD는 12nm Zen+ 기반 제플린 다이 4개로 2세대 EPYC을 출시했을지 모른다. 이 세계관에서 2세대 라이젠 스레드리퍼가 다이 4개를 채용했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그러나 10년만에 촉발된 경쟁이 점차 격화되어 가는 탓으로 AMD는 2세대 라이젠 스레드리퍼에 제플린 4개를 탑재하기로 결정, 자연스레 EPYC은 운신할 폭이 현 12nm Zen+ 하에서는 매우 좁아진 탓에 곧장 7nm Zen 2로 직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는 작년 이맘때의 전망보다도 훨씬 신규 라인업의 경사가 가팔라짐을 의미한다.
비슷한 시각에서, 인텔 역시 28코어 다이를 HEDT 시장에 끌어내리되 자사의 서버 라인업과 상호경쟁하는 구도를 피하기 위해 몇 가지 핸디캡을 부여할 여지가 있다.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메모리 확장성의 제한이다.
구체적으로, 현재 LGA 3467 플랫폼은 6채널 DDR4 ECC 메모리를 지원하지만 적어도 코어 X의 간판을 달고 나오는 모델에서 ECC 메모리 지원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메모리 채널 수를 4개로 제한하는 것 역시 인텔로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제온 브론즈/실버/골드가 그러한 방식을 통해 코어 X가 되었다)
[LGA 3467 소켓과 LGA 2066 프로세서의 크기 차이]
결국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에 다소 차이가 있을지언정 AMD와 인텔이 선택할 수 있는 '다음 단계'는 비슷한 양상으로 수렴해가는 것이다 : 로드맵을 훨씬 건너뛰는 세대교체의 아웃페이싱, 서버용 기획의 HEDT에의 적용, 그리고 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혹은 궁색하게) 취해야 할 서버와 HEDT의 차별점 만들기까지.
하지만 이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소비자에게는. 바라건대 내년에도 올해처럼 기분 좋은 뒤통수를 맞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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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잘 보고 배워갑니다 ^^
혹시 2세대 쓰레드리퍼의 메모리 채널 구조에 대해서 자료가 공개된 것이 있나요?
메모리 채널이 2개 비활성화인지 1+1+1+1 구조인지 언급된 건 아직 못본 것 같아서요.
X399쪽이 실상은 옥타채널을 거짓으로 막아놓았고, 바이오스 업데이트로 활성화 시키는 형태로 옥타채널을 지원하는 식의 변경은 가능성이 없으려나요.
인텔쪽이 X299와 LGA2011-3을 낙동강 오리알 만들면서까지 LGA3647와 헥사채널 컨트롤러를 들고 온 걸 고려해보면 옥타채널을 위해 암드가 또 미친짓을 할 가능성도 고려해봄직 하다 싶어서요.
상대적으로 언더독 포지션을 계속 유지할 생각이었다면 예년처럼 재플린 2MCM으로 버티면서 가격으로 상대를 해봄직도 한데 굳이 4다이를 써놓고 메모리 채널을 제약하는 건 조금 모양이 이상하기도 하고 말이죠...
컴퓨텍스쯤 되는 발표회에서 X399 메모리 채널의 봉인을 풀어준다는 언급이 없었으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히 현행의 쿼드채널을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게 맞습니다만.....
AMD는 참 괴상한 짓을 많이 해왔죠 그동안-_-
비공식적으로 아난드텍이 위와 같은 모양을 전망했는데, 개인적으로도 기존 메인보드와 호환성을 고려해 1+1+1+1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PYC과 스레드리퍼가 패키지와 소켓 자체가 같더라도, 처음부터 4채널로 설계된 스레드리퍼 메인보드는 (1세대 스레드리퍼에서) 더미 자리로 배정된 다이로부터 유래하는 메모리/PCIe 입출력과는 접속되지 않을 것 같기에...
만약 그렇지 않고, 현재의 메인보드가 2DIMM씩 4채널과 1DIMM씩 8채널을 스위치할 수 있으려면 처음부터 복잡한 설계를 취했어야 할텐데 (2다이로 인식되면 각 다이에 2DIMM x 2채널씩, 4다이로 인식되면 각 다이에 1DIMM x 2채널 또는 2DIMM x 1채널씩으로 스위치할 수 있도록)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만, 또 모르는 것이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