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IBM 모델 F 이야기
IBM
IBM은 최고의 컴퓨터 회사 중 하나인 만큼 오래 전부터 키보드를 생산해왔습니다. 크게 보면 빔(beam, 보, 樑) 스프링, 버클링 스프링 두 종류의 스위치를 3세대로 생산해 왔고, 입력 방식은 축전식(정전용량 무접점)과 멤브레인 두 종류를 마찬가지로 3세대에 걸쳐 생산했습니다. 간단하게 표로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명칭 | 생산 시기 | 입력 감지 | 세부 모델 |
IBM Beam Spring | 1971-1980 | 축전식 | IBM 3277/3278/5100 등 |
IBM Capacitive Buckling Spring | 1981-1994 | 축전식 | IBM PC XT/AT Keyboard 등 (Model F) |
IBM Membrane Buckling Spring | 1985-1996* | 멤브레인 | IBM Enhanced/Space Saving Keyboard (Model M) |
*IBM 브랜딩은 이 때 종료되었지만 현재도 같은 설비로 Unicomp가 생산중
IBM의 키보드는 공통적으로 키를 눌렀을 때 스프링이 변형되는 것을 이용해 촉감/소리 피드백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타자기가 소리와 촉감 피드백을 통해 입력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처럼 타이피스트에게 입력 여부를 판단하게 해주는 용도입니다. 당시에는 생경했던 컴퓨터의 특성상 입력 여부를 알 수 없는 리니어(e.g. 체리/후지쯔)보다는 유저들에게 좀 더 쓰기 쉬운 선택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IBM 키보드는 모두 입력/해제 위치가 다른 특유의 이력 현상(Hysteresis)이 존재합니다. 스프링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발생하지만 타이피스트에게 오자 입력 확률을 낮추는 긍정적 기능도 했던 듯 합니다. IBM 키보드는 모든 클릭 계열 키보드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으며, 후대의 체리, 알프스(마티아스) 등의 클릭 스위치도 IBM 키보드와 특징 상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델 F
IBM 모델 F는 PC라는 개념이 처음 도입되던 오리지널 "PC"시절 처음 등장한 물건입니다. 단순히 시기적으로 PC의 도입과 더불어 등장한 게 아니라 특징적으로도 현대적인 키보드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전의 빔스프링 키보드와는 다르게 DIN(Deutsches Institut für Normung, 독일표준협회)의 인체 공학 규정(A키 열(home row)은 책상으로부터 30mm이상 높이여서는 안된다)을 준수한 키보드입니다. 인체 공학의 영향을 받아 상식적으로 변한 키보드 높이와 더불어 현대 키보드의 특징인 원통형(<->타자기의 구면형) 키캡 또한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원통형 키캡은 손가락 끝에 걸리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인체공학적이라고 생각했던 듯 합니다. 이후 애플 등에서도 원통형 키캡을 채용하면서 현대는 원통형 키캡 키보드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PC가 사무실에서 집으로 컴퓨터를 옮겨 놓았듯, 모델 F도 타자기에서 키보드를 분리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리지널 PC 키보드(흔히 동작 프로토콜을 따라 Model F XT로 통칭)는 지금 보면 상당히 괴상망측한 디자인입니다. 일단 엔터 키가 ANSI나 ISO가 아닌 고유의 1자형 엔터이며, 백 슬래시/버티컬 바 키는 좌쉬프트 옆에 그레이브/틸드 키는 엔터 옆에 뒀습니다. 캡스락과 알트 컨트롤은 셋이서 자리를 바꿨죠. 넘패드 또한 분리된 게 아니라 그냥 이어져 있습니다. 1유닛(문자열 키 크기) 이상의 키캡은 스페이스 바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괴한 계단형 모양이 들어가 있습니다. 스페이스바는 10유닛 크기로 어마어마하게 크죠. 지금 봐서 이상한 게 아니라 당시 사람들도 타자기와는 또 다른 기괴한 배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구한 키보드는 이 다음 세대의 AT 규격 키보드입니다. PC에서 PC AT 로 넘어가면서 하드웨어적인 향상도 이루어졌지만 키보드의 배열도 현대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엔터 키가 흔히 보이는 역 ㄴ ("Big-Ass") 엔터로 바뀌고 넘패드를 분리해 어느정도 이해할 만한 배열이 되었습니다. 다만 이스케이프 키가 넘락 자리에 있고, 넘패드 엔터가 없고 나누기 키 대신에 스크롤 락과 시스템 리퀘스트 키가 있습니다. 이러한 배열의 기묘함을 고려해도 모든 모델 F 중에서 가장 현대적인 안시 104 배열에 가까운 편이라 최소한의 적응기를 거치고 사용할 수 있기에 AT 키보드를 구했습니다.
수리
작동이 보증되지 않는 상태여서 저렴하게 구했지만 작동이 안 됐습니다. 사실 빈티지 키보드를 구하면 "ㅈ됐다"와 "이걸 덜 ㅈ된 상태로 만들자" 사이를 줄타기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뭔 상황이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고치는 데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립니다. 저도 이걸 한 달 넘게 뚝딱거리고 있었으며, 겨우 쓸 수 있는 형태로 만들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원래 키보드는 보강판에 부식이 꽤나 진행된 상태였고, 컨트롤러 유닛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단순하게 보강판을 방청 처리 도색하고 컨트롤러만 교체한 것은 아닙니다. 알트키가 들어가도록 드레멜로 보강판을 갈아서 자리를 만들어줬으며, 모델 M의 스페이스 바를 사용할 수 있도록 스태빌라이저를 넣어줬습니다.
결과적으론 모든 수리가 성공적이었고, 안시 배열에 맞는 엔터, 윈키/메뉴키(사실은 펑션 레이어키)까지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하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사용
IBM 모델 F는 간혹 PC 역사상 가장 잘 만든 키보드로 꼽히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는 저도 동의합니다. 제가 고친 키보드도 아무래도 좋은 보관환경에 있었던 것이 아닌 거 같은데 31년의 세월을 버텼고 외장 자체는 거의 변함이 없는 걸 보면 빌드 퀄리티 만큼은 기성품 중에서 수위를 다투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한 주관적으로 키감도 모델 M의 키감보다는 더 세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델 M 보다는 초기 압력이 가벼우면서도, 끝까지 누를 때 멤브레인 시트의 먹먹함이 조금 느껴지는 모델 M과는 달리 더 깔끔합니다. 그러나 특유의 스프링 핑 노이즈는 모델 M보다도 더 거슬리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호불호가 크게 갈릴만합니다.
음전하와 양전하 사이의 평형 상태를 깨트리는 것을 인식하는 축전식 키보드이기 때문에 동작 감지 전압의 역치를 조정해줘야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수도 있습니다. 직류에서는 축전이 된 후 전류를 흘려보내지 않는 커패시터의 특성상 스위칭 다이오드 없이도 무한 동시 입력(n-key rollover)가 가능합니다. 또한 전기 전도성 접점이 없어서 다중 입력 오류(key chatter)도 없고 수명도 긴 우수한 방식입니다. 다만 축전량 변화에 대단히 민감하기 때문에 물 한방울이라도 스프링에 묻어버리면 신나게 오작동합니다. 심지어 키캡만 뽑아 놓아도 동작이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관리상 불편한 점은 있습니다. 같은 방식의 토프레 리얼포스는 그래도 러버돔 시트가 자연적으로 절연을 해주는 데 비해서 모델 F는 스위치가 개방된 형태라 이물질에도 더 취약하고 동작에 문제가 생길 확률이 더 높습니다.
빈티지 키보드라고 해서 막 대단한 게 가능한 건 아닙니다. 크고 무겁고 튼튼해서 좀비 아포칼립스 사태가 일어난다면 둔기로 쓸만하단 거 빼면 기능적으로 현대 키보드보다 나은 게 없습니다. 형형색색의 현대 키보드 트렌드에 비하면 오히려 촌스럽고 거추장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처음 만들어진 시장에서 보여줄 수 있는 창의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현재보다도 과거를 보는 게 더 새롭다는 게 모순적이긴 하지만 그러한 새로움이 제가 오래된 키보드를 좋아하고 파고들게 되는 이유인 거 같습니다.
잼아저씨's Signature
-
추천 수
1 추천인 | - |
- ibm_pc_woman_large.jpg (File Size:452.2KB/Download:0)
- IBM_Model_F_XT.png (File Size:1.09MB/Download:0)
- IBM_Model_F_AT.jpg (File Size:353.9KB/Download:0)
- 1080627.jpg (File Size:1.17MB/Download:0)
- 1080646.jpg (File Size:1.64MB/Download:0)
- 1080842.jpg (File Size:893.0KB/Download:0)
- 1080784.jpg (File Size:1.88MB/Download:0)
- 1080849.jpg (File Size:1.05MB/Download:0)
- 2017-12-19.png (File Size:9.0KB/Download:0)
- 1080723.jpg (File Size:709.4KB/Download:0)
역사와 전통의 키보드네요 저도 저런 키보드 한 번 써봤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It is the 14th of August 14th of August. It's been three days since the end of the year
He was staying at the office of Bupyeong-bu. Something big happened, so all the work in Yeongjong-do
https://betgoca.com/sands/ - 샌즈카지노
https://betgoca.com/merit/ - 메리트카지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