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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U] 권불십년 : 9년 집권이 끝나다

Dr.Lee | 조회 3935 | 추천 14 | 2017.05.16. 18:56 http://drmola.com/pc_column/166804

근래 보기드문 숨가쁜 한 주였다. 지난주 오늘 들어선 새 정부는 한숨 돌릴 새도 없이 곧바로 임기를 개시했으며 지난 4년, 나아가 지난 9년간 차츰 굽어가며 지나온 궤도를 그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다. 9년. 아홉수. 금방이라도 끓어오를 것 같은 임계치 근방의 긴장감이 감도는 숫자. 오늘 우리는 또 다른 분야에서, 세 개의 9를 만날 것이다. 이것 역시 '잃어버린 9년'과 맥이 닿아 있음은 물론이다.

 

코어 아키텍처를 발표하며 넷버스트의 악몽으로부터 각성, AMD의 거센 추격을 따돌린 인텔은 그러나 다시 한번 AMD에게 '첫 네이티브 쿼드코어 CPU' 타이틀을 뺏기는 수모를 겪는다. 이듬해 인텔이 야심차게 발표한 블룸필드는 코어를 소폭 개량한 네할렘 아키텍처에 기반했으나 인텔의 첫 네이티브 쿼드코어 CPU로써 주목받았고, 온칩 L3 캐시 / 통합 메모리컨트롤러 등 경쟁사의 핵심 기술을 '더 잘 구현해' 녹여내는 것으로 AMD의 자존심을 완전히 꺾었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AMD가 동세대 인텔과 경쟁조차 불가능해진 것은.

 

 

인텔은 이 기념비적 CPU에 헌사할 새로운 브랜드명을 고안했고 그것은 i7. BMW 모델넘버를 연상시키는 명명법에 따라 코어 i7은 항상 당대의 최상위 CPU에만 허용되는 특권이었다. 이때가 2008년 11월,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이며 이때 등장한 i7 브랜드의 헤게모니는 지금 이 순간까지 함락되지 않았다. 심지어 데스크탑 CPU의 코어 개수를 처음으로 6개로 늘린 걸프타운조차 i7이라는 브랜드를 바꿔놓지는 못했다. 최상위 브랜드로써 코어 i7의 장기집권이 상징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인텔이 CPU 시장의 패권을 굳건히 장악하고 있으며 여기에 어떤 위협도 없다는 사실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연말부터, 최소한 하나의 전제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을 우리는 목도할 수 있었다. 작년 가을의 HOT CHIPS 행사에서 전격적으로 발표된 Zen 아키텍처는 제국에 참패하고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 AMD가 상징하던 대항마적 위상을 '어쩌면 회복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준 첫 신호였다. 이어 지난 3월 마침내 만질 수 있는 현실이 된 Zen, 라이젠 7. AMD 자신에게는 6년만의 새 아키텍처이자 인텔의 코어 이후 무려 11년만에 '인텔 패권'에 금이 가게 한 실체적 위협이었다. 점유율 0.8%이던 AMD는 최상위 라인업인 라이젠 7 3종만으로 점유율을 25%로 끌어올리는 기염을 토한 데 이어 전방위적인 라인업 전개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9_1.jpg

 

이러한 AMD의 공격적 행보는 지난 9년간 끄떡도 하지 않던 인텔로부터 마침내 리액션을 이끌어냈다. 그간 수차례 예고되었던 스카이레이크 아키텍처 기반 차세대 HEDT CPU와 데스크탑 CPU의 조기 출시, 그리고 예상을 상회하는 스펙으로 예고된 스카이레이크-SP 제온 CPU의 등장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통상적인 연례행사적 업그레이드와 지금의 움직임을 구분할 단 하나의 '킥'이 과연 존재하는가. 오랜 의문 끝에 우리는 그 답이 드러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도하게 되었다. 바로 만 9년만에, 코어 i7이 권좌에서 끌려내려오게 된 것이다. 인텔 자신이 강력한 위기감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나타내기에 이보다 좋은 상징은 없다.

 

스카이레이크 기반 차세대 HEDT CPU인 스카이레이크-X / 카비레이크-X는 각각 6-12코어 모델과 4코어 모델을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었다. 금번 추가된 내용은 기본적으로 지난 루머들을 재확인하는 수준이지만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모델넘버 -그 상위개념인 브랜딩까지- 를 최초로 공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코어 i9라는 새로운 브랜딩으로 인텔의 HEDT CPU를 상징하는 간판이 교체되었다는 것이다.

 

스크린샷 2017-05-16 오후 6.52.53.png

 

구체적으로 코어 i9 시리즈는 12코어 i9-7920X, 10코어 i9-7900X, 8코어 i9-7820X와 6코어 i9-7800X의 네가지 모델로 구성된다. 데스크탑용 스카이레이크/카비레이크 및 카비레이크-X와 달리 L2 캐시 용량이 코어당 256KB에서 1MB로 늘고, 대신 L3 캐시 용량은 2-2.5MB에서 1.375MB로 줄어든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최상위 모델인 i9-7920X를 기준으로 L3 캐시 용량은 16.5MB에 불과, 현세대 플래그십 모델인 i7-6950X의 25MB와 비교했을 때 2/3에도 못 미친다. 다만 L2 캐시가 크게 증가한 만큼 기존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캐시 용량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게 되었다.

 

HEDT CPU 라인업에서 코어 i7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유서깊은 이 이름은 카비레이크-X가 오롯히 이어받게 되었는데 상술했다시피 이들은 4코어 모델로만 제공될 예정. 한편 데스크탑용 스카이레이크와 카비레이크는 옵테인 지원유무라는 차이라도 있었으나 스카이레이크-X와 카비레이크-X는 그마저 같다. 따라서 카비레이크-X가 스카이레이크-X에 대해 갖는 "구조적" 차이점은 L2 캐시와 L3 캐시의 구성 정도밖에는 없다. 카비레이크-X는 데스크탑용 스카이레이크/카비레이크와 동일하게 코어당 256KB의 L2 캐시, 2MB의 L3 캐시를 탑재한다.

 

한편 코어 i7을 대체할 i9를 9년만에 투입한 것과 대조적으로 인텔 내에서 HEDT의 위상 자체는 전례없이 낮아져 있는 상황. 스카이레이크-X와 스카이레이-SP는 단지 접미사뿐 아니라 적용되는 플랫폼도, 최대 코어 개수도, 메모리 인터페이스도 다르며 모든 면에서 스카이레이크-X는 열위에 놓여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제온 CPU를 HEDT 플랫폼과 하이브리드해 사용할 수 있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다. 데스크탑(LGA115x)과 서버/HEDT(LGA20xx)의 2원화된 플랫폼 체계는 스카이레이크 세대 들어 데스크탑(상동), HEDT(상동), 서버(LGA3467)의 3원 체계로 한층 더 중층화되었고 이는 나날이 심화되는 컨슈머-프로페셔널 워크로드의 양극화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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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D 역시 이 흐름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일단 인텔로 하여금 코어 i9라는 선제적 움직임을 이끌어낸 당사자로써 그 대항마에 라이젠 9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또한 지금까지의 플래그십 라인업인 라이젠 7이 8코어 구성에 불구, 인텔 대비 부족한 PCIe 라인 수라든지 최대 듀얼채널 DDR4 메모리 구성만을 지원하는 등 어딘가 인텔의 HEDT 플랫폼에 비해 아쉬운 점이 남았었기에 쿼드채널 DDR4 메모리를 지원하고 PCIe 라인 수를 64개로 확장한 라이젠 9의 등장은 가려운 부분을 정확히 긁어주는 것이자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 내용추가 : 5.17 오전 5시(한국시간) AMD는 새 HEDT CPU를 정식으로 공개하며 스레드리퍼라는 이름을 소개했다. 따라서 라이젠 9라는 이름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기존처럼 데스크탑(AMx), 서버/HEDT(SPx)의 2원 체계를 고수했다면 라이젠 9 자체는 코어 i9과 대등하게 경쟁했을지 몰라도 AMD의 숙원인 서버 시장에의 재진입은 그야말로 폭망했을 것이다. 프로페셔널 워크로드의 성능 요구량이 나날이 가파르게 상승함에 따라 인텔은 최신 스카이레이크-SP 제온 CPU를 28코어로 확대하고, 그간 쿼드채널 DDR4 메모리 구성까지 지원하던 것을 6채널로 50% 늘린 바 있다. 경쟁자의 움직임이 이러할진대 AMD는 무소의 뿔처럼 도도히 쿼드채널에 머무른다? 말도 안 될 일. 그러니 이것은 필연적인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AMD의 차세대 서버 CPU 네이플스가 8채널 DDR4 메모리를 지원하게 된 것 말이다.

 

다만 3원화된 각 플랫폼(AM4, SP3r2, SP3)을 모두 다른 규격으로 설계해 각각에 맞춘 메인보드를 공급할 수 있는 인텔과 달리 AMD는 '중소기업'으로써 저예산에 힘쓴 흔적이 엿보인다. 네이플스와 라이젠 9의 규격을 '완전히 다르게' 설계하지 않고 공통적으로 LGA4094 규격을 채택한 것이 그 예이다. 메모리 채널 수와 보드당 소켓 수 등으로 차별화한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핀 호환성을 전제한다면 두 플랫폼을 따로 개발하는 비용은 크게 절감되었을 것이다.

 

04.jpg

 

9년만에 나란히 9라는 숫자를 내걸고 진검승부를 벌이게 될 인텔과 AMD는, 그러나 내부적으로 상당히 다른 접근법으로 HEDT CPU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차이도 있다. '커다란 단일 칩(빅 뷰티)' 대 '적당한 수율이 확보되는 크기의 칩(스윗 스팟) 여러개'로 요약될 이 차이는 다름아닌 엔비디아와 라데온 테크놀러지 그룹(구 ATI)의 전략관과도 맥이 닿는 지점이 있으며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링 구조와 크로스바 구조의 해묵은 일장일단과도 맞닿아 있다.

 

AMD는 라이젠 5/7에 공통적으로 사용된 8코어 "제플린" 다이를 원형으로 하고 이를 2개 탑재한 멀티칩모듈(MCM)을 라이젠 9로, 4개 탑재한 MCM을 네이플스로 파생하는 전략을 취한다. 다이 자체가 213mm2의 제플린보다 커지는 것이 아니기에 수율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네이티브 원칩 구조가 아닌 데서 오는 성능저하요인을 배제할 수 없는 단점이 공존하는 체제다. 이를 뒤집으면 정확히 인텔 HEDT CPU의 장단점이 된다. 요컨대 양사가 각자 잘 할 수 있는 전공을 살린 것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다.

 

지난 9년, CPU 시장의 경쟁체제가 무너지고 코어 i7이라는 이름을 지겹게 봐야 했던 잃어버린 9년의 적폐가 비로소 청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어느 쪽의 승패로 귀결되든 궁극적인 승자가 소비자인 것은 확실하다. 강력한 제국 인텔이 사실상 상수(constant)와 다름없는 굳건한 지위를 가졌기에 당분간 시장 경쟁의 성립을 좌우하는 유일한 변수는 AMD가 될 수밖에 없다. 부디 CPU 시장이 오래도록 경쟁적이기를, 그리하여 소비자들이 오래 풍요롭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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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게임미식가] 잼아저씨 2017.05.16 19:54

일단 HEDT가 제온과 분리되면서 그 지위 자체가 오묘하게 되었는데 그 틈을 라이젠과 화이트헤이븐이 파고들(려 노력하)겠죠. 흥미로운 전쟁입니다.

Profile image 삑점 2017.05.16 20:26
개발비와 생산비는 AMD쪽이 압도적으로 저렴하겟죠?
Profile image RS 2017.05.16 20:41
뭐든 나와서 치고 박고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
Profile image SamirDuran 2017.05.16 21:22
둘다 발열만큼은 정말 자비없을듯 합니다.
Profile image ihatesniper 2017.05.17 16:34
무료로 읽기 아까운 글이군요.
Profile image MadDOg 2017.05.19 08:51
1따봉 드리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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